무거마을에서 바라다 보이는
구봉산입니다.
천황사는 호남의 비로봉이라
일컫는 구봉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무거마을에서 구봉산 쪽으로 2키로가 채 안되는 곳에 보이는 조포마을.
이 마을을 지나면 이내 천황사로 들어서는 길입니다. 비 온 뒤라 한층 고즈넉합니다.

조계종 금산사의 말사로 그동안 은둔의 고찰이었던 이곳에
외지인의 방문이 드문드문 이어지게 된 건 최근부터랍니다.
용담댐으로 많은 마을이 수몰되면서 신도수는 눈에 띄게 줄어 든 대신
외지의 방문객만 늘어난 것이 절을 경영해야 할 스님 입장에선
그다지 좋은 것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황사의 대웅전은 보수공사 중이었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공사 전 대웅전의 모습입니다.
천황사는 875년 통일신라 때 무염선사가 숭암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고
1065년 고려 문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고쳐 세웠다고 합니다.
그 후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건물을 새로 짓고 수리하였는데
숙종에 이르러 이웃 주천면 운봉리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기록에 전합니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는데 경내의 개가 요란하게 짖어댑니다.
그 소리에 요사채의 문이 열리면서 스님이 기웃 내다보더니
말을 걸어오며 곁을 내어주었습니다.
“공사가 언제쯤 끝날까요?”
묻는 질문에 스님은 무심하게 ‘나도 모르지’ 대답합니다.
기와를 새로 올리는 공사를 시작했지만 묵은 기와를 내리고 보니
손봐야 할 곳이 한 두 곳이 아니게 됐답니다.
그때마다 공사를 중단하고 설계변경하기를 벌써 몇 달 째라합니다.
알려져 있는 천황사의 자료들에 대해 보충설명을 요청드렸습니다 .
자료들의 근거가 불확실하다며 시크한 표정을 짓던 스님은
운봉리에 있었다는 숭암사가 천황사의 원래 이름인 것인지
그조차도 불확실하다합니다.
그 절이 운봉리에서 현재의 곳으로 터를 옮겼다는 것도 자료가 없답니다.
기록된 것처럼 숙종 때 자리를 옮겼다면 그로부터 지금까지 고작 350여 년,
절 앞에 식재된 수령 800년의 전나무를 설명 할 길이 없긴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 천황이라는 이름이 금지되어 ‘용흥사’로 잠깐 바뀌었다가
해방이 되면서 다시 천황사라 고쳐 불리웠다는건 새로 알게된 부분입니다.

천황사의 부러진 전나무입니다.

수령은 물경 800년이라 하나
나무의 윗부분이 부러져 보호수로 지정되는데 그쳤습니다.
이 전나무가 부러진 연유에 대해 여러 설들을 들었습니다.
벼락을 맞았다, 병들어 그리되었다, 태풍 때 바람에 부러졌다는 말까지..
스님은 딱따구리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2002년 8월,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갔던 태풍 ‘루사’가 원흉이랍니다 .
딱따구리가 나무에 구멍을 곳곳에 파 놓아 부실해졌던 나무가
마침 강타한 태풍에 속절없이 피해를 본 듯 합니다.
딱따구리는 나무의 벌레를 잡아주는 익조로 알려졌으나
꼭 그렇지만은 않은가봅니다.

오래된 사찰일수록 전나무가 군집해 있던 것이 문득 궁금해져 찾아봤습니다.
전나무는 곧게 자라는데다 재질이 좋아 오래전부터 건축재로 쓰였다는군요
특히 기둥재로 안성마춤이라 많은 유서깊은 사찰의 기둥이 전나무라고합니다.
사찰의 보수를 대비해 많이 심었을거라는 추측을 해봅니다.

역광 때문에 아침에 가야 전나무의 수형을 제대로 사진에 담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워낙 고목이라 뚱뚱하다보니
근접사진은 해가 통째로 나무 뒤에 가려져 역광도 잘 나옵니다.

말투만 무뚝뚝했을 뿐 친절하셨던 스님은

천황사 입구에 서 있는 거대한 은행나무의 수령을 묻는 질문에
끝내 무뚝뚝한 대답을 합니다.
“은행나무에게 물어보시오”

천황사 앞 길을 흐르는 계곡입니다.
비가 온 뒤였음에도 바닥은 이끼만 잔뜩 낀 채 바위 사이로 듬성듬성 고여있는 물이 전부입니다.
계곡이라는 말이 무색합니다.


천황사의 길목과 밭기슭에 모셔진 부도입니다.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는 것인데
시신을 화장한 후 나오는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입니다.
세운 시기는 조선시대 후기라 합니다.

남암으로 향합니다. 천황사와 그리 멀지 않은 길입니다.
직선거리로 200m, 갈용리 마을과는 500m 남짓 떨어져있습니다.
천왕사 음수대를 지나 길 왼편의 돌다리를 건너야합니다.

암자가 은거해 있기 딱 좋아 보이는 오솔길에 들어섰습니다.
구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여우 몇 마리쯤 쉬이 들락거렸을 것 같습니다.
노면에 이끼가 잔뜩 올라앉은 길은 내 생전에 처음 보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오래지않아 모습을 드러낸 붉은 양철지붕의 남암은
암자라기보다 남루한 달동네 무허가주택처럼 생뚱맞고 초라해보였습니다.
그 이상한 암자 정 중앙에 전나무로는 최초라는 천연기념물이 보무도 당당하게 서있습니다.

천황사의 800년 수령에 못 미치는
400년 수령이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전나무 중 가장 크고
학술적 가치가 높다합니다.
나무의 끝부분이 구부러지긴했지만
오랜 세월동안
이처럼 좋은 수형과
이처럼 올곧은 수세를 유지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
전나무는
햇빛을 좋아하는데다
얕은 뿌리 때문에 바람에 약해
군락으로 무리지어 심어야 한답니다.
천황사의 전나무와 함께
홀로 몇 백년을 버티어 온
매우 특이한 경우라고 합니다.

남향으로, 암자 정중앙에 심어진 나무라기에 암자를 비켜 담았던 사진을 다시 고쳐 찍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대부분의 다른 작은 절들도 정중앙에 큰 나무가 서있는 걸 종종 본 기억이 있습니다. 작은 절들의 경우이니 기둥의 보수자재를 넘어 불교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상징물인가? 궁금한게 많으니 늘 배고 고픕니다.

절 어귀에 들어섰을 때 남루해보였던 남암은
자꾸 보니 그새 정이라도 든 것인지 소탈하고 정감이 갑니다.

남암은 80년 된 암자입니다.
주지인 혜주스님은
전나무의 수령이 400년에 이르고
또 절 중앙에 나무가 위치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남암의 역사가 알려진 것보다 더 오래되지 않았을까 추측하면서
정확한 기록이 없는 부분에 대해 안타까워하였습니다.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어 인터뷰 요청을 하였지만
그저 ‘은자일 뿐이다’ 는 혜주스님의 무심한 대답만 돌아 올 뿐입니다.

다시 남암으로 들어가는 석교 앞에 섰습니다.
석교 밑 시냇물이 맑습니다.
작은 돌맹이 하나를 던졌더니 어른 손가락만한 물고기들이 금새 몰려듭니다.
돌맹이를 던졌는데 도망가지 않고 되려 모여드는게 신기합니다.

천황사와 남암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녘에 붉게 영글어가는 사과가 곱습니다.
사과가 많이 매달린 것이 풍년인 듯 합니다.

※ 천황사와 남암 돌아보는데 소요된 시간 : 약 1시간 30분